덴마크 코펜하겐 파헤치기 1/4 [] 인어공주 동상> Kastellet요새> 프레데릭 교회> 아말리에 가든> 아말리엔보르 궁전> 로젠보르 궁전> 뉘하운> 코펜하겐 캐널 투어

피서를 위한 여행, 2013년도의 여름 핀란드~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의 북유럽 여행기입니다. 내용은 2020년도에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운영시간은 계절에따라 달라지기도 하며 정기적인 휴관일 뿐만 아니라 성탄절, 주현절, 새해 등 특정일에 휴관하는 경우도 있으니 참고하시고 일정을 짤 때에는 구글지도나 본 사이트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첫 유럽여행에서 종착역은 덴마크의 코펜하겐입니다. 실제 덴마크어로는 쾨벤하븐이라고 발음되는것 같더라구요. 덴마크에서도 4박 5일정도를 머물기 때문에 코펜하겐 카드 72시간 짜리를 구매하여 여행하기로 했습니다. 전날은 도착하고 바로 저녁이었기 때문에 그냥 1박이 날라갔고 둘째날이 되어서야 덴마크에서의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덴마크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바로 블록 장난감으로 유명한 회사인 #레고 음향기기 회사인 #뱅앤올룹슨 스포츠 브랜드인 #험멜 이젠 한국에서도 볼수있는 잡화점인 #플라잉 타이거 인기있는 세계맥주인 #칼스버그가 있습니다. 덴마크 우유 떠올리신분?




첫 방문지는 덴마크의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작품 중 하나인 인어공주 동상이 세워져 있는 곳으로 갑니다. 도심에 있는 곳이 아니라 지하철이 아닌 교외전차로 이동하게 되는데, 곳곳에서 그래피티를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위험하게 철로근처에서 어떻게 작업했지

도심에 있는것도 아니고 크고 화려한 동상도 아닌데 여기서 기념샷을 찍기 위한 수많은 단체 여행객들의 투어 차량으로 정신없습니다. 근교열차역인 외스터포트에 하차하면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습니다. 외스터포드 역에서 인어공주 동상 가는길에 있는 Kastellet 요새를 지나가면 가까이 갈 수도 있고 예쁜 전경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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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stellet 요새

운영시간_ 6:00~20:00
근교열차 역에서 내리면 걸어가는 길에 별 모양의 Kastellet이 있습니다.




@Den little havfrue; The little mermaid; 인어공주

생각보다 많은 인파가 있어서 인어공주의 세계적인 인기(?)에 놀랐습니다.






@Frederiks kirke; Fredrik church; 프레데릭 교회

운영시간_ 10:00~17:00, 금,일요일 12:00~
휴관_ 콘서트가 열리는 경우에는 일반입장 금지
입장료_

17~18세기동안 코펜하겐은 북쪽으로 영역을 더욱 확장하게 됩니다. 이 시기의 왕이었던 크리스티안 4세는 로젠보그성, 증권거래소, 원형타워 등 건축을 명하게 되는데 이들은 코펜하겐의 문화적인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프레데릭 5세 통치 기간동안에는 이 지역의 동쪽 지구의 도시화 계획이 이루어 졌습니다. 그는 덴마크의 건축가 니콜라이 에이트베트를 프레데릭 타운 개발 계획의 담당자로 임명했으며, 훗살 아멜리안보르 궁전과 웅장하고 세련된 조각들이 많이 세워졌습니다.


프레데릭 타운의 중심점에 위치한 교회는 왕실의 300년 통치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습니다. 이 교회는 1740년 프레데릭 타운 개발을 맏은 니콜라이 에이트베트에 의해 그려졌으며 1749년 프레데릭 왕의 거행속에 초석을 깔게 됩니다. 1754년 에이트베트 사후, 교회 건축은 프랑스 건축가 니콜라스 앙리 자딘이 잇게 되었으며 이 건축가에 의해 상당한 변화를 얻게 됩니다.
원래 노르웨이의 대리석으로 지어질 예정이었으나 1770년 슈트루엔제 총리가 이 교회건설 프로젝트를 중단하라고 명령할 정도로 비용이 많이 들었습니다. 2년 후 슈트루엔제 총리가 처형되게 되었고 건축을 재개하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1세기 동안 교회 광장에는 덴마크의 목사, 다작 시인 (국립고등학교 창시자) 등 여러 사람들이 교회의 완성을 위해 움직이기 전까지 잔해들만 남아있었습니다. 이런 노력들은 건축과 교수 Meldahl에게 접촉하여 교회 완공을 약속받은 사업가인 Tietgen의 재정적 도움으로 성공했습니다. 결국 교회는 1894년 8월 19일 완공됩니다.
초기 계획대로 교회는 주로 노르웨이의 대리석으로 지어졌지만 상부는 덴마크의 대리석을 포함한 여러가지 자재들로 건축되었습니다. 상부의 돔은 유럽에서 큰 축에 속하며 돔 안에는 Henrik Olrik이 그린 예비 도면으로 Chresten Overgaard가 프레스코화를 그렸습니다.

이 교회에는 두개의 오르간이 있는데요, 하나는 더이상 사용되지 않는 현대식 스완 오르간이며 다른 하나는 1963년부터 사용되고 잇는 현대식 마르쿠센 오르간입니다.

교회 주변에는 많은 동상들을 볼 수 있습니다. 덴마크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쇠렌 키에르케고르, 앙스가, 킹고, 그룬트비 등 덴마크를 대표하는 사람들 입니다. 교회 지붕의 테라스에 있는 동상들도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들인 모세부터 마틴 루터 킹 까지 이릅니다. 이 교회는 일반 교구 교회이자 덴마크 주교회 즉 복음주의 루터교이며 코펜하겐 사람들에겐 마블교회라고 더 잘 불리웁니다.




@Amalie garden; 아말리에 가든

프레데릭 교회 근처에 있는 아말리엔보르 성 근처의 아말리에 가든과 그 분수. 젊은이들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해서 분수를 배경으로 한 컷 찍어줬습니다. 제가 찍은 사진을 같이 보고 있네요.
가끔 외국인들이 저희의 사진을 찍어주는 경우가 있는데 사진 포인트가 좀 다른것 같았습니다. 외국인들은 배경은 관심없고 인물이 사진 가운데에 오도록 찍는데 보통 저를 포함한 한국인들은 보통 사진부탁을 받으면 배경위주의 인물사진을 찍습니다. 제가 인물 중심의 사진이 어색해 보이는 것 처럼 이들도 제가 배경 위주로 찍으면 구도가 어색하다고 느낄것 같습니다.ㅎㅎㅎ




식사 시간이 되어 오늘도 길가에서 사먹는 젤라또로 점심식사를 퉁칩니다. 날씨는 덥지 않았지만 먹으면 시원하기도 하고 콘으로 먹으면 나름 배도 불러서 이만큼 든든한 여름철 간식도 없더라구요.




@Amalienborg; Amalienborg palace; 아말리엔보르 궁전 

운영시간_ 10:00~17:00 (하절기 외의 기간에는 15시나 16시가 폐장, 1월은 11:00~19:00 ) 
휴관_ 1~3월, 4~5월, 11~12월 중 월요일 휴관인 주가 많음, 크리스마스 근처
입장료_ 95 DKK (폐장 20분전 마감)

아말리엔보르 궁전은 4개의 로코코 양식의 궁전과 팔각형의 파빌리온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인데 아마 에이트베트가 파리의 콩코드 광장에서 영감을 얻어 지은게 아닐까 추측합니다. 아말리엔보르 궁전의 모습은 독일과 프랑스의 양식이 결합된 특이한 로코코 양식입니다.

폼페이우스 챔버의 문 안쪽의 손잡이가 돌고래 모양인데요, 돌고래는 프랑스에선 왕위 계승자를 상징하는 것으로 크리스티안 8세에게 미래의 왕임을 자각시키는 장치라고 합니다.


아말리엔보르 궁전은  1750년대 귀족을 위한 거처으로 지어졌으나 1794년 크리스티안보르 화재 이후 왕실이 소유하게 됩니다. 아멜리엔보르의 이름은 소피 아말리 여왕을 위해 1667~1673년에 지어진 여름 궁전인 소피 아말리엔보르의 이름을 따온 것이며 이탈리안 양식의 아름다운 별장이자 궁중 축제의 장소였으나 크리스티안 5세의 생일 파티로 인해 1689년 불탔습니다. 그 당시 옆에 오페라 하우스가 있었는데 장식들이 불길에 휩싸이면서 화재 발생시 탈출이 어려웠던 건물임이 증명되었습니다. 180명에 가까운 귀족 자제들이 사망하였고 불이 순식간에 궁전으로 번져 불타버렸습니다.

화재 발생 후 몇년동안 재건축 계획이 있었지만 1749년에 상인 그룹이 그 지구에 대한 계획을 제시하게 전까지는 실제적인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제안은 프레데릭 5세의 방탕한 생활방식 때문에 왕을 대신해 통치를 잘 하고있던 Chamberlain A.G. Moltke 경에 의해 더 큰 규모로 재건축 되었습니다.  

프레데릭 교회에서 언급했던 니콜라이 에이트베트는 당시 로코코 양식의 저명한 궁정 건축가였으며 그가 프레데릭스스타덴 구역 일부의 도시계획 책임자로 선정됩니다. 그는 도시계획, 아말리엔보르, 프레데릭 교회를 단 시간안에 지어냈으며 프레데릭스스타덴의 모든 건축공사에 대한 지침을 만들고, 거리 경관에 최대한 평등성과 규칙성을 보장하기 위한 설계를 했습니다. 에이트베드는 아말리엔보르 뿐만 아니라 다른 궁전에도 책임자를 맡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단기간이었나 하면 프레데릭스타덴은 1750년에 건축공사가 시작되어 그 다음해 최초 마을 주택이 완공되었으며 9개의 궁전이 1760년 전에, 프레데릭 병원이 1757년에 지어졌으니 엄청난 속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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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데릭스스타덴은 이상적인 도시로 설계되었으며, 도시계획은 국가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비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왕의 승마상은 그가 마주보고 있는 신(프레데릭 교회)로부터 권력을 얻고, 왕가와 귀족(아말리엔보르)에 둘러쌓여 있습니다. 아말리가데 거리를 따라 세워져 있는 대형 상업 건물들은 국가의 안녕을 위한 상업의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음을 상징하며, 많은 마을의 주택들도 상징적인 차원에서 근면한 부르주아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의도되었습니다. 또한 프레데릭 병원(현재의 덴마크 디자인 박물관)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의 보살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광장에서는 근위병 교대식을 볼 수 있는데요 궁전에 왕실가족 중 거주하는 사람의 유무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며 어떤 깃발이 지붕위에 걸려있냐에 따라서 어떤 사람이 거주 중인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제비꼬리 모양의 깃발이 걸려 있으면 아무도 없는 상태라고 하네요.





@Rosenborg slot; Rosenborg palace; 로젠보르 궁전

운영시간_ 9:00~17:00 (하절기를 제외하고 10:00~, ~15:00, ~16:00)
휴관_ 1월, 2월말 3월초, 11월~12월말 월요일, 크리스마스 근처
입장료_ 120 DKK

중세시대의 코펜하겐 궁전은 처참할 정도로 구식이었기 때문에 크리스티안 4세는 젊고 야심찬 르네상스 시대의 통치자로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코펜하겐 거주지가 필요했습니다. 작은 여름 궁전에서부터 시작하여 28년동안 4단계를 거쳐 우리가 현재 보고있는 모습이 1633년에 완성되었습니다. 크리스티안 4세는 이 궁전을 너무 마음에 들어 하였고 프레데릭스보르의 임종할 때 마지막 순간을 이 궁에서 보내기 위해 썰매로 이송하라고 명령했으며 그는 로젠보르 궁전의 침실에서 임종을 맞이합니다.

높은 탑과 붉은색 사암으로 장식된 로젠보르 궁전은 크리스티안 4세 시대에 세워진 많은 건물 중에서도 중요한 건물인데요, 건축하는 과정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음에도 부룩하고 완벽하게 건설되었습니다. 로젠보르 궁전은 네덜란드의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이로인해 그 시대의 덴마크 건물들이 이 양식을 따라 전형적인 형태가 되었습니다. 크리스티안 4세는 건축에 대한 지식이 많았고 건축에 정성을 다하는 왕이어서 로젠보르 궁전이 지어지는데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했을 것입니다.


1605~1606년에 로젠보르 궁전 남쪽의 핵심인 쾌락의 궁은 두 층(본층 제외하고)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회전식 계단이 있는 첨탑이 도시를 마주하고 있었고 동쪽에는 만이 있었습니다. 1611년 도개교가 있는 게이트 타워가 세워졌고 현재 게이트 하우스의 중앙부를 형성합니다.

1613~1615년에 쾌락의 궁은 이전 크기의 두배로 확장되어서 지금의 크기에 이르렀으며 여전히 두 개의 층 구조였습니다.

1615년에 거주할 준비는 갖추어 졌으나 그 다음해에도 건축 공사는 계속되었습니다. 새로운 창고가 들어서고 첨탑의 모양이 바뀌었으며 서쪽에는 큰 탑이 세워졌습니다. 1624년에 공사가 끝났고 크리스티안 4세는 처음으로 로젠보르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1633년에는 2, 3층의 침실로 들어가는 입구가 부적절하였고, 크리스티안 4세 아들이 결혼식을 할 때 급히 해결해야할 문제로 되었습니다. 당시 사용했던 계단은 허물고 현재 사용하는 계단과 야외의 이중계단으로 대체되었는데, 원래 이 계단은 바깥쪽 문에서 2층까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2~3층 끼리만 연결되어 있던 내부 계단이 1758년에 1층까지 연결됩니다.


로젠보르 궁전은 크리스티안 4세의 증손자인 프레데릭 4세가 다른 여름궁전을 원하기 전까지 왕실의 거주지로 사용되었습니다. 대신 프레데릭 4세는 로젠보르 궁전이 내부 인테리어가 잘 보존되어 있었기 때문에 왕실 소장품의 본거지로 탈바꿈 시킵니다. 원래 개인 침실은 1층에 있었으며 왕은 북쪽에, 왕비는 남쪽에 있었고 그 사이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대기실이 있었습니다. 프레데릭 3세 시대에 왕과 왕비는 침실을 리모델링하여 절대 군주에 맞게 분위기를 바꿉니다. 크리스티안 5세는 스캐니안 승전을 기념하는 12개의 테피스트리를 걸었으며 프레데릭 4세는 1층에 있던 대기실을 나누었으며, 그 중 하나를 어둠의 방으로 만들어 왕과 왕비를 위한 침실로 개조했습니다. 2층은 그대로 두었구요.
프레데릭 4세 이후 로젠보르 궁전은 1794년 크리스티안보르에서 발생한 화재와 1801년 코펜하겐에서 발생한 영국 공격 이후 왕실 거주지로만 이용되게 됩니다.

정원와 식물원이 굉장히 넓어 산책하기도 좋으며 식사공간에는 나무로 된 테이블과 벤치가 있어서 점심식사를 준비해 온 경우 먹을 수 있습니다.

궁 내부를 관람하는데 한 안내원이 어디에서 왔냐고 물었습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만날때 인사와 헤어질 때 인사를 알려달라고 해서 둘 다 '안녕' 인데 억양이 다르다고 이야기 해줬습니다. 만날때는 말꼬리를 올리고 헤어질떄는 쭉 빼듯이요. 말하면서 생각한건데 영어로는 만날때와 헤어질때 인사말이 다르다는게 떠올랐습니다. 덴마크어로는 어떨지 모르지만요.
제 말을 따라하는 그 분을 보니, 먼 나라 사람으로부터 한국어로 안녕이라는 인사를 들으니 반가움과 묘한 괴리감이 동시에 느껴졌습니다. 나보다 훨씬 키가 큰 남자였지만 말꼬리를 올리고 늘이는 모습에 왠지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구요. 안녕이란 인사를 기억해준다면 나중에 다른 한국인이 방문했을때 안녕이라고 인사를 건네 주면 좋겠습니다.


@Nyhavn 뉘하운

타이트한 일정 속에서 후반부에 들어서야 처음으로 찾아온 여유였습니다. 유럽의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니 평일 낮에도 사람들이 노천 카페에 앉아 커피나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많이 봤는데요, 여행객인지는 모르겠지만 내심 부러웠습니다. 나도 여행객인데
이미 식사때를 지났긴 했지만 긴 낮탔에 풍경만 보자면 한낮 같기도 했고, 제대로 된 식사를 해본게 이게 처음 아니었을까 싶네요. 날씨도 좋고 운하를 끼고 있는 식당 노천 테이블에서 피자와 맥주를 곁들이니 별거 아닌데 엄청 행복했습니다. 크지 않은 금액으로 모든 걸 다 누리는 기분이랄까요. 노천 카페에서 늘어져 있던 사람들처럼 여행객인지 현지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그제서야 바쁜 일상을 벗어나 이미 벗어난건데... 함께 여유로움을 공유해본 장소라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이후 여행에서도 그렇지만 워낙 뭔가를 방문하고 보려는 욕구가 강하다 보니 티타임이 스케줄로 잡혀있지 않은 이상 티타임이 죽어도 안생기더라구요 ㅎㅎㅎ




@Copenhagen Canal tour; 코펜하겐 캐널 투어

원래 크루즈 투어를 할 예정은 없었습니다. 운하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햇볕을 쪼이다 보니 나른해 지면서 크루즈를 타고 쉴겸 돌아볼까란 생각에 시간을 확인해보니 얼추 맞을것 같아서 타기로 했습니다. 뉘하운 근처 Netto boat tour에서 출발하면 투어하는데 1시간 정도 소요되구요, 영어 가이드도 함께 들을 수 있습니다.  코펜하겐 카드가 있으면 무료로 탑승 가능합니다. 

맥주는 마셨고 햇빛을 쬐며 배가 물결에 술렁이니까 요람같은 기분이 들어 사실 중간에 좀 졸았습니다^^;; 졸았던 사이에 멋진 풍경이 지나가지 않았길 바라며...ㅎㅎ

검정색 화강암으로 지었다는 도서관이라고 들었습니다 ㅎㅎ
해가 늦게 지다보니 야경 보는게 정말 어려웠습니다. 이날도 결국 어둑해진 하늘은 못찍고 숙소로 돌아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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