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웁살라 한나절 파헤치기 [] 웁살라 대성당 > 웁란드 박물관 > 웁살라 성

피서를 위한 여행, 2013년도의 여름 핀란드~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의 북유럽 여행기입니다. 내용은 2020년도에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운영시간은 계절에따라 달라지기도 하며 정기적인 휴관일 뿐만 아니라 성탄절, 주현절, 새해 등 특정일에 휴관하는 경우도 있으니 참고하시고 일정을 짤 때에는 구글지도나 본 사이트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스웨덴에서도 패스권을 쓸 겸 근교도시로 어딜 가볼까 고민하다 선택한 곳이 웁살라 라는 도시입니다. 관광지로는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 스톡홀름, 고텐부르크(예테보리), 말뫼에 이어 네 번째로 큰 도시이면서 스톡홀름이랑 가까워서 방문해 보기로 헀습니다.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 이면서 명문대인 웁살라 대학교도 있습니다. 이곳 출신 중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는 생물 분류학의 아버지인 칼 폰 린네가 있으며 대중적으로 사용하는 (미주쪽 제외) 섭씨 온도를 발명하기도 했습니다.

웁살라로 가는 검정색 열차에 탑승합니다. 기차가 검정색이라니 뭔가 신선한 느낌이 들었는데요, 내부는 친숙한 기차 내부의 그것이었습니다. 2등석 좌석이었지만 붐비지 않고 한산해서 탑승하기 좋았습니다. 스톡홀름에서 웁살라로 가는 기차는 한 시간에 2회가량 운행하며 40분 정도 소요됩니다. 버스를 이용하면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니 기차가 편리하고 빠르네요.







웁살라 관광지도입니다. 우측에 웁살라 역이 있고 멀지 않은 곳에 왠만한 관광지들이 모여 있어서 따로 교통편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이동하였습니다. 대략 웁살라 성, 대성당, 미술관, 대학교, 보태닉 가든(웁살라 식물원) 정도가 보이네요.




기차역에 내려서 피리스 강 쪽으로 이동하면 푯말이 나와있기도 해서 원하는 목적지로 쉽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웁살라에서 머무르실 분이라면 웁살라 카드 구입을 고려해 보세요. 스토라토리예트(Storatorget)에서 판매하며 1일권이 125 SEK 입니다. (2013년 기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관광지도 있고 대중교통도 이용할 수 있는 시티카드라고 합니다.


@Domkyrkan; Uppsala cathedral; 웁살라 대성당; 파사드 대성당

운영시간_ 8:00~18:00

웁살라 대성당은 웁살라에 세워진 첫번째 성당이 아닙니다. 첫 번째 성당은 감라 웁살라 교회라고 따로 있으며 이 대성당은 1270년경부터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 출신의 건축가 에스티엔 드 본누엘이 성당 건축의 시작을 맡았으며 동쪽의 예배당 부분과 성단, 남쪽과 북쪽의 정문을 세웠습니다. 1331년, 마그너스 에릭슨 업플랜더스 왕에게 다시 한 번 건축 기금을 요청했었고 성당은 "단기간 내에 신의 은총으로" 완공되었습니다. 그 왕의 간청과 담벽의 흔적들이 성단 부분의 성당과 예배당 주변으로 구성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1300년대 후반에는 서방에서 신도석(교회 내부의 돌)을 가지고 옴으로써 원래의 계획이 완성되었습니다. 바스테라스 출신 건축가 니콜라스는 성당의 기다란 부분을 책임진 사람 중 한명이었으며 그 부분은 성당의 동쪽 부분보다 디자인이 더 단순한 것입니다.

성당의 완공은 자금부족난과 혹독한 추위, 해충 발생 등 문제들 때문에 1435년이 되어서야 이루어 졌습니다. 완공하는데 160년 정도가 걸린 것이지요. 성당은 근처에서 만들어진 벽돌로 지어졌으나 앞부분의 기둥들은 예테보리에서 온 석회암입니다. 완공된 당시의 성당은 어떻게 생겼는지 도안이 남아있지 않기 떄문에 아무도 모릅니다. 아마도 각 예배당에는 성 십자가와 마리아, 하나 이상의 제단들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벤치가 있는 교회의 서쪽 부분인 신도석은 1300후반~1400년대 초에 지어졌으며 탑들은 준공 후 수십년 뒤에나 세워졌습니다. 
탑에서 바라본 모습은 통로, 트랜셉트(십자가 교회의 좌우 날개부분)로 이루어진 십자가 형태의 성당입니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서쪽에 입구를 가지고 있고 동쪽에는 높은 제단에 있는 성가대가 있습니다. 1430년대에 서쪽 정문이 완공되기 전까지는 남문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몇몇 대주교들은 성당에만 집중하지 않고 1200년대 후반에 성당학교를짓거나 1477년 제이콥 울프슨 대주교가 웁살라 대학교를 설립하게 됩니다. 구스타프 바사의 통치기간인 1523~1560년에는 스웨덴 교회가 로마 카톨릭 교회를 떠났고 1593년 웁살라 회의에서는 루터교회가 됩니다.

앞서 이야기 헀듯이 웁살라 대성당의 본 모습을 모르는 이유는 화재때문입니다. 여러 차례 화재 중 가장 큰 피해를 입힌것이 1702년의 화재였는데 170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복구가 완료되었습니다. 로마 카톨릭교를 떠나게 되면서 유행에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 특징인데요, 벽면에는 스테인드글라스 대신에 평범한 유리로 대체되었고 새로 만들어진 탑의 높이가 낮아진 것이 예입니다.

구스타프 바사와 그의 여왕도 이곳에 묻혀있지만 귀족이나 유명한 식물학자인 울로프 루드벡과 다른 포스팅에서 설명한 적이 있는 린네, 대주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대주교 나단 쇠데르블롬, 에마누엘 스웨덴보그도 이곳에 있습니다.

1800년대 후반에는 건축가들이 원래의 모습과 비슷하게 되돌리기 위해 노력했으며 1885~1893년에는 건축가 헬고 제터발이 고딕양식으로 대성당을 복원시키면서 현재의 벽화, 창문의 유리, 뾰족한 첨탑을 세웠습니다. 지금은 첨탑의 높이까지 해서 북유럽 대성당 중에서 가장 크고 높은 성당이 되었습니다.

1971~1976년에는 리모델링이 계속되고 있었고 벽과 창문이 깨끗해졌습니다. 다섯개의 예배당은 모던한 벽면을 예배장소로써 캐노피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바뀌었습니다.
웁살라 성당은 중세시대 이유에 엄숙한 예배와 교회모임으로서 매일 예배를 드릴수 있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스웨덴의 주교들과 사제들은 이 곳에서 서품되었고 스웨덴의 왕과 여왕들은 1719년까지 이곳에서 대관식을 치루기도 했습니다.

2010년, 새로운 스프링쿨러 시스템과 전기, 수도, 난방 파이프 교체로 화제 보호가 강화되는 쪽으로 개조되었고 2012년에는 주명 및 음향장비도 개선되었으며 창문 보존도 시작되었습니다. 18세기 바로크 양식의 설교단, 촛불 나무, 목조조각 테이블, 시계탑과 스테인드글라스, 파이프 오르간도 눈여겨 보세요! 의상으로는 중세시대부터 보존된 세계 유일의 마가릿 여왕의 황금드레스, 르네상스부터 보존되고 있는 유일한 남성복인 스텐 스투레의 것도 있습니다.

매년 약 10만명의 사람들이 성당의 예배와 콘서트에 참석하여 30만명의 사람들은 관광객이나 잠시 침묵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 웁살라 성당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Upplands museet; Upplands museum; 웁란드 박물관

운영시간_ 12:00~17:00
입장료_ 무료
도시 박물관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웁살라를 포함한 웁플랜드 지방의 5000년 역사를
알 수 있는 곳이라 생활과 관련된 물건이나 디자인 가구 전시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Uppsala slott; Uppsala castle; 웁살라 성

운영시간_ 8:00~18:00 (보물관 12:30~16:00) (2월기준)
입장료_ 80 SEK (2013년 기준)
가이드 투어로 입장할 수 있습니다. 구스타프 바사 왕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1561년 에릭 14세의 즉위식, 1654년 스투레 가문의 일원과 크리스티나 여왕의 퇴위식도 있었습니다. 에릭 14세가 즉위식때 썼던 왕관은 1561년 만들어졌으며 이 후의 왕들의 즉위식에서 쓰여졌는데, 이 왕관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왕관이라고 합니다. 현재 로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웁살라 성 앞에서 바라본 시내의 전경입니다.
정원 너머에 보이는 건물이 린네 박물관입니다.

에릭 14세가 어떤 인물인가 봤더니 구스타프 바사의 아들로 왕권을 강화하려고 귀족들을 혹독하게 다뤘는가 봅니다. 결국 동생들에 의해 폐위되고 감옥살이 하다가 위궤양으로 죽었다고 하는데요, 향간에는 동생이 에릭14의 수프에 비소를 탔서 중독으로 죽였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나 봅니다. 현대에 들어와 성분분석 결과 비소 성분이 정말 발견되었다고 하네요. 에릭14세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에게 끊임없이 구혼하였으나 거절당하자 다른 여자에게도 구혼하였으나 결국 거절당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평민 계급의 사람과 결혼했다고 하네요. 엘리자베스 1세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짐은 국가와 결혼하였다"라고 말한 그 영국 여왕입니다. 엘리자세스 1세 여왕은 이 전에 시모어 제독이 정부의 허가없이 청혼한 죄로 처형당하고 아버지가 계모와 친모를 죽인데 의한 충격으로 독신이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 있습니다.
의외로 웁살라 성 방문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기가 힘드네요.. 건물 내부는 가이드 투어로만 가능하다고 가이드 북에 쓰여 있었는데 (12:45, 14:45 두 타임) 전 그냥 관람했던것 같습니다. 안에는 미술작품이 있어서 갤러리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감라 웁살라라고 중심지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6세기의 분묘 유적지가 있습니다.
스톡홀름에서 웁살라까지 왕복 두시간도 안걸렸지만 시간을 내서 올만한 곳은 아닌것 같습니다. 제가 다시 스웨덴으로 여행을 계획한다면 웁살라를 빼고 스톡홀름을 더 여유롭게 구경하고 싶네요. 아니면 더 많은 곳을 방문하던지.

저에게는 스톡홀름 도시 분위기가 북유럽 고유의 차가움이 있으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친절하고 상냥하고 그런 따뜻함을 떠나서  마트나 가게에 들어가도 기본적으로 다 인사도 해주고 특별히 불쾌한 경험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차를 타고 시내로 돌아왔더니 갑자기 비가 내리고 있네요. 그래도 소나기라 잠시 기다리니 금방 멈춰서 저번 핀란드 투르쿠처럼 발을 오래 잡히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트에 들러 맥주와 숙소 근처에서 케밥집에서 포장해온 샌드위치로 마지막 밤을 마무리 했습니다. 왼쪽 맥주인 Pripps bla와 오른쪽의 Spendrups는 스웨덴의 맥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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