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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아테네 파헤치기 3/4 [] 그리스 아테네 최고의 야경명소를 찾아

 과거로의 시간여행 🏛️ 리케이온 (Lykeion, Λύκειον) 🎫 통합티켓 입장 가능 ⏰ 운영시간: ~15시 (너무 일찍 닫는다… 결국 안에 들어가 보지 못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운 학원으로, 그는 이곳에서 철학·물리학·생물학 등 다양한 학문을 가르치며 과학 연구를 진행했다. 고대 그리스 학문과 토론의 중심지였던 곳이지만, 지금은 터만 남은 채 발굴 현장처럼 남아 있다. 아테네 중심가에서 고대의 지성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장소다. 🏺 베나키 박물관 (Benaki Museum) 리케이온 근처에 위치한 사설 박물관 으로, 가이드북에서 “소장품이 매우 풍부하다”는 말에 혹해 서둘러 찾아갔다. 하지만… 운영시간은 18시까지. 도착했을 땐 이미 문을 닫을 준비 중이었다. “가이드북에 낚였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건물 외관은 아름답고, 짧은 시간 안에도 그리스 전통문화와 예술품이 어우러진 분위기 가 전해졌다. 이제는 서둘러 야경을 보러 이동해야겠다. 🚶 콜로나키 거리 (Kolonaki)에서 케이블카 정류장까지 리카비토스 언덕 전망대로 향하기 위해 콜로나키 거리(Kolonaki) 를 따라 걷는다. 그 길 위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집시 소녀 를 만났다. 단 한 소절, 네 마디만 반복하며 연주하던 그녀에게 1유로를 기부. “얘야… 돈을 벌고 싶으면 한 곡이라도 완주해보렴…ㅠㅠ” 콜로나키의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나무 계단이 이어지고, 그 끝에 케이블카 정류장 이 나온다. 🚠 리카비토스 케이블카 (Teleferik Cable Car) 구글 지도에서 Teleferik Cable Car Station 으로 검색하면 찾을 수 있다. 영어 알파벳으로 된 표지판이 반가울 정도. 🎟️ 탑승요금: 왕복 7.5유로 / 편도 4유로 🕒 운행 간격: 매 시각 30분마다 출발 🗣️ 다만, 스태프들이 대화인지 언쟁인지 하느라 약간 지연 출발 😅 🕘 운행시간: ...

그리스 아테네 파헤치기 2/4 [] 새해 연휴를 커버할 수 있는 완벽한 여행일정

 

과거로의 시간여행 ✈️ 언덕에서 바다까지

프놀로그
새해 첫날 아침, 낯선 도시에서 맞이하는 하루는 조금 특별하다. 전날 밤 10시에 잠들었다가 폭죽과 환호 소리에 잠시 깼고, 다시 숙면에 빠졌다가 새벽 6시 반쯤 눈을 떴다. 거울 속에는 잠시 충혈로 붉어진 눈과, 그 덕에 쌍꺼풀이 평소보다 더 선명해진 얼굴이 비쳤다. 숙소 식당에 내려가 보니 아침 8시 반, 이른 시간도 아닌데 손님은 우리뿐. 아마도 전날 광란의 새해를 보낸 현지인들이 아직 꿈나라에 있었던 듯하다. 한국 여행자들이 유독 부지런하다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오늘도 빠르게 첫 발걸음을 뗐다. 2018년 1월 1일, 새로운 한 해의 첫 여정을 아테네의 고대 유적들과 함께 시작한다.


제우스 신전 (Temple of Olympian Zeus)

1월 1일이라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결국 철제 울타리 사이로 거대한 기둥을 엿볼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다시 오면 꼭 직접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결국 이번 여행 내내 내부는 보지 못했다. 멀리서 보기만 해도 웅장했지만, 문득 "신들이 머무는 자리는 우리 인간의 시간표대로 열리고 닫히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드리아누스의 문 (Arch of Hadrian)

아치형 석문에 새겨진 글귀 ― "이곳은 아테네, 테세우스의 고대도시"와 "이곳은 하드리아누스의 도시, 테세우스의 것이 아니다" ― 가 유명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풍화와 세월의 흔적이 너무 깊어, 내 눈에도, 내 카메라 렌즈에도 그 흔적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아테네의 과거와 로마의 흔적이 교차하는 곳, 마치 도시 자체가 두 개의 얼굴을 가진 듯한 느낌이었다.


리시크라테스 기념비 (Monument of Lysicrates)

플라카 지구 한가운데 자리한 원형 석조 건물. 위에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지만, 한때 연극 대회의 승리를 기념하는 청동 삼각대가 올려져 있었다고 한다. 위키백과를 참고해보니, 기원전 334년 무렵 세워졌으며 당시 부유한 후원자가 연극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지은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가까이 다가가면 작지만 정교한 건축미가 돋보인다. "디오게네스의 등불"이라는 별명처럼, 고대 아테네의 문화적 빛을 간직한 기념비였다.

위키 백과 전문

"디오게네스 의 등불"로도 알려진 리시크라테스 기념비 는 원통형 석조 건물로 가장 잘 보존된 고대 후원 기념물입니다. 그것은 아테네 의 고대 트리포돈 거리에 있으며 기원전 335-334년에 리시크라테스에 의해 지어졌습니다. 그 위에 중요한 물체를 지지하고 강조하기 위해: 지난 극적인 게임에서 승리한 플레이의 스폰서(금융가) 역할에 대한 상으로 그에게 주어진 청동 삼각대. 후원자들은 자비로 춤을 추는 부유한 시민들이었다., 즉 연극과 공식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의 집단. 청동 삼각대는 연극 대회의 1등상으로 극작 후원자 에게 수여되었습니다. 삼각대는 디오니소스 성소에 보관 되거나 삼각대 옆 거리에 배치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더 장엄한 방식으로 전시하기 위해 삼각대는 때때로 기둥 형태를 가질 수 있는 높은 기반에 놓이거나 리시크라테스처럼 사원 모양의 기념비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리시크라테스 기념비는 그 위에 있는 삼각대는 보존되지 않았지만 오늘날까지 같은 위치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1669년에 인근 카푸친 수도원에 편입되어 입구를 만들기 위해 기둥 하나를 이동한 후 열람실과 도서관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수도원은 그리스 혁명 중에 파괴되었습니다. 나중에 기념비는 잠시 동안 프랑스 국가의 소유가되었습니다. 오늘날 기념비는 Lysikratous, Byronos 및 Selley 거리의 교차점에 있는 Lysikratous 광장에 있습니다.
기념비는 포로라이트 (높이 4m, 너비 3m) 로 만든 높은 정사각형 페디먼트 , 그 위에 대리석으로 된 원형 건물, 원형 사원 모양 , 다락방 의 6개 반 기둥으로 둘러싸인 코린트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치형 지붕이 있는 스타일. 수도 사이의 공간은 부조 삼각대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새겨진 비문에 따르면 이 기념물은 Akamanti 부족 의 아이들의 승리 춤의 위업을 담고 있으며 111회 올림피아드 (기원전 335-334년) 동안 Lysithides의 Lysikrates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 서신 위 의 프리즈는 Tyrrhenian 해적들이 Dionysus 를 점령했다는 신화에서 부조를 담고 있습니다 . 지붕은 모놀리식 돔( Hymettos 의 파란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래쪽 주변에는 특이한 파도가 장식되어 있고 돔형 표면에는 비늘 모양의 보석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 표면은 지붕의 상단 중앙에서 끝나는 일련의 애국가에 의해 양면에서 교차되며, 그곳에서 가시가 많은 부속물로 변형되어 청동 삼각대, 사티로스 및 돌고래 의 두 조각상이 지지하는 리시크라테스의 상이 놓여 있습니다.

플라카 지구 (Plaka)

새해 첫날이라 가게들이 대부분 문을 닫아 조용했지만, 그 덕분에 사람 없이 고요한 골목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플라카 대신, 마치 서울 북촌 한옥마을을 조용히 산책하는 듯한 기분. 아침의 플라카는 오히려 더 진짜 그리스 같았다.


올림픽 경기장 (Panathinaiko Stadium)

입장은 유료지만, 밖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대리석으로 쌓아 올린 경기장은 마치 시간을 거슬러 고대 올림피아 제전의 함성을 떠올리게 했다. 1896년, 근대 올림픽의 첫 회가 이곳에서 열렸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한참을 서 있었다.

위키백과 정보

아테네 올림픽 스타디움(그리스어: Ολυμπιακό Στάδιο Αθηνών)은 그리스 아테네에 위치한 경기장으로 아테네 올림픽 스포츠 컴플렉스의 일부분이다. 스피로스 루이스 스타디움으로도 불리는데, 이 이름은 1896년의 최초의 근대 올림픽의 마라톤 우승자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 경기장은 2004년 하계 올림픽에서 육상 경기와 축구 결승전을 열었다. 또한 2004년 8월 13일의 개막식과 8월 29일의 폐막식이 이 곳에서 열렸다. 경기장의 관중 기록은 74,473명인데, 원래는 올림픽 기간에 72,000명의 수용이 가능하도록 지어졌지만 축구 결승전을 할 때에는 트랙 부분에도 관중석을 설치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
경기장은 1979년에 시작되어서 1980년부터 1982년까지 건설되었다. 경기장은 제 때에 완공되어 1982년 유럽 육상선수권대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 경기장은 1982년 9월 8일에 그 당시의 그리스 대통령인 콘스탄틴 카라만리스에 의해 개막되었다.
또한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1991년의 지중해 게임이 열렸고 1996년 하계 올림픽의 그리스 개최가 무산된 후에 1997년 세계 육상선수권대회를 개최하였다.

필로파포스 언덕 (Philopappos Hill)

 언덕으로 오르는 길목마다 오렌지 나무가 늘어서 있고, 새해의 햇살은 따스했다. 이곳에 오른 이유는 바로 소크라테스의 감옥을 보기 위해서였다. 사실 학계에서는 진짜 감옥인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이곳을 특별하게 만든다. 바위에 남아 있는 방의 흔적, 작은 수로, 그리고 2층 건물의 잔해… 그 앞에 서 있으니,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라는 노랫말이 절로 떠올랐다.

소크라테스의 감옥

위키백과 출처

이 장소는 고대 철학자가 한때 이 시점에 투옥되었다는 믿음 때문에 소크라테스로부터 그 이름을 얻었습니다 . 우리는 크리톤과 파이돈의 대화에서 소크라테스의 투옥과 처형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습니다.
우리의 역사 연구에 따르면 필로파포스 언덕의 고고학 유적지는 소크라테스가 투옥되었던 고대 아테네의 감옥과 동일시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5세기 중반에 지어졌으며 큰길에 접해 있고 땅속 움푹한 곳에 위치하고 목욕시설이 있었다는 점 등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교도소 대화에 대한 플라토닉한 설명. 또한 건물의 폐허에서 발견된 물체 중에는 소크라테스의 작은 조각상도 있었습니다. 이 건물은 19세기에 영국 역사가 Thomas Smart Hughes에 의해 발굴되었으며, 그는 또한 이 건물을 고대 감옥과 처음으로 동일시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고대 아고라의 남서쪽, 일리아이아의 궁정이 있던 지역 근처에 위치한 소위 "포리노 건물" 이 실제로는 감옥이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필로파포스 지역은 아테네의 여러 여행 문헌에서 알 수 있듯이 목욕탕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조각된 구조물은 아마도 상당히 인상적인 2층 또는 3층 건물에 속했을 것입니다. 이는 바위 표면의 들보 배열에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외부 바닥에는 건물 정면에 형성된 수로와 연결된 덕트가 있고 남쪽으로 조각 된 계단은 건물의 더 높은 층과의 소통을 제공했습니다. 건물의 조각 된 뒷부분은 3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동쪽으로 출입구가 있고 뒤에 물탱크가 있습니다.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이 구조물은 튼튼한 콘크리트 벽으로 덮여 있었고 아크로폴리스 와 국립 고고학 박물관 의 유물을 보관하는 지하실로 사용되었습니다.

GPT의 추가설명 🏛

📌 소크라테스의 감옥: 사실 이곳이 진짜 감옥이었다는 증거는 부족하지만, 플라톤의 《크리톤》과 《파이돈》에 기록된 대화는 소크라테스의 최후를 생생히 전해준다. 관광객들은 그 학문의 거장이 머물렀을지 모를 작은 돌방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필로파포스 언덕 정상의 기념비

방금 안 사실인데 필로파포스 기념비의 뒷면만 보았다는 것. 위키백과 보다가 진짜 앞모습을 알았네... 필로파포스의 풀네임은 정말 길다. 필로파포스 기념비에 얽힌 이야기를 살펴보자.

위키백과 출처

필로파푸스 (Gaius Julius Antiochus Epiphanes Philopappos, 그리스어: Γάϊος Ἰούλιος Ἀντίοχος Ἐπιφανής Φιλόπαππος 65 – 116년)는 1세기와 2세기의 로마 제국에서 살았던 콤마게네 왕국의 왕족이다. 로마 제국에서 가장 저명한 그리스인 인사 중 한 명이었다.
필로파포스는 116년에 사망했는데, 그의 죽음은 여동생 율리아 발빌라와 아테네 시민들에게 큰 슬픔을 주었고, 로마 황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필로파포스를 추도하며, 발빌라와 아테네 시민들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근처에 있는 뮤즈의 언덕에 무덤 기념물을 세웠다. 그의 대리석 무덤 기념물은 여전히 필로파포스(혹은 필로파푸) 기념비라 알려져 있으며, 무세이온 언덕은 오늘날 필로파푸 언덕(Λόφος Φιλοπάππου)이라 알려져 있다.

그리스 지리학자 파우사니아스는 필로파포스의 장엄한 무덤을 '시리아인을 위해 지어진 기념물'이라 묘사한바 있다. 이 기념비는 기원전 6세기의 사제 시인이자 예언가였던 무사이오스가 묻혔다라고 전해지는, 같은 장소에 지어졌다. 아크로폴리스와 아테네의 옛 경계를 마주하는 이 무덤의 위치는 필로파포스가 아티네 사회에서 지녔던 높은 지위를 나타낸다.
필로파포스 기념비는 기부(基部)가 떠받치고 있는, 2층으로 된 구조물이다. 아래층에는 릭토르들이 이끌고, 전차를 타고 있는 집정관으로서 필로파포스를 나타내는 프리즈가 존재한다. 위층에는 세 명의 조각상들이 나타나 있으며, 왼쪽은 안티오코스 4세, 가운데에는 필로파포스, 오른쪽에는 현재 소실된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가 있었다.

필로파포스 기념비는 기부(基部)가 떠받치고 있는, 2층으로 된 구조물이다. 아래층에는 릭토르들이 이끌고, 전차를 타고 있는 집정관으로서 필로파포스를 나타내는 프리즈가 존재한다. 위층에는 세 명의 조각상들이 나타나 있으며, 왼쪽은 안티오코스 4세, 가운데에는 필로파포스, 오른쪽에는 현재 소실된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가 있었다.

GPT의 추가설명 🏛

📌 필로파포스 언덕의 기념비: 기원후 2세기 초, 로마와 그리스 사회에서 중요한 인물이었던 필로파포스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묘비. 아테네 시민들과 여동생의 애정이 담긴 이 기념물은 여전히 아크로폴리스를 마주하며 서 있다. 아래층의 전차 부조와 위층의 조각상들은 당시 그가 누렸던 명예를 보여준다.

피닉스 언덕 (Pnyx Hill)

언덕 산책로를 따라가면 피닉스 언덕에 도착한다. 아크로폴리스를 바라보는 최고의 뷰포인트. 고대에는 민회가 열리던 정치적 장소였다고 하는데, 오늘날엔 간식 먹으며 쉬기 좋은 명소다. 돌담에 앉아 바라본 아테네의 풍경은 그 자체로 역사와 현재가 겹쳐지는 순간이었다.


바다를 향해 – 팔리로와 글리파다

아테네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해안인 팔리로 역에 도착했을 때, 드디어 그리스의 바다를 보게 되었다. 이어 해안 트램을 타고 글리파다 해변까지 달렸다. 

해질 무렵 창밖으로 펼쳐진 바다는 서울의 한강, 부산의 해운대와 또 다른 매력을 주었다. 겨울의 그리스 바다는 생각보다 더 푸르고 차분했다.


에르무 거리와 오래된 교회들

도심으로 돌아와 에르무 거리를 걷다 보니, 파나기아 카프니카레아 교회가 눈에 들어왔다. 중세 비잔틴 건축의 아름다움이 번화한 쇼핑 거리 한가운데 서 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아테네의 거리 곳곳은 이렇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었다.


마무리

새해 첫날, 고대와 현대, 산과 바다, 유적과 일상이 모두 이어진 하루였다. 역사 속 인물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길을 걸으며, 나 자신도 어느 순간 과거와 대화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이라는 이번 여행의 테마에 가장 어울리는 하루가 아니었을까.

🚇 아테네 지하철 & 트램 이용기
아테네 시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가장 낯설게 다가왔던 건, 바로 그리스어 역 이름 표기였다. 구글 지도에는 역명이 그리스어 대문자로 표시되는데, 실제 역사와 승강장에는 소문자 표기가 대부분이라서 순간적으로 같은 곳이 맞는지 헷갈리곤 했다. 익숙하지 않은 알파벳 모양이 겹치니, 지하철역 이름을 확인하는 데 유난히 시간이 더 걸렸다.

처음 해외여행을 갔던 일본은 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운 덕분에 한자가 친숙했고, 대만이나 홍콩은 중국어를 몰라도 한자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다른 유럽 국가들은 알파벳 기반이라 모양이라도 대조가 가능했는데, 그리스 알파벳은 수학·과학 교과서 속 기호로만 접하던 낯선 문자라 더더욱 생경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동시에, 그 기호들이 실제로 언어로 쓰이고 의사소통의 도구가 된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또 하나 의아했던 점은 플랫폼 문 위치 안내 부재였다. 한국처럼 승강장에 ‘문 위치 표시’가 따로 없어서, 그냥 사람들이 서 있는 대로 무작정 기다렸다가 열리는 곳으로 달려가야 했다. 처음엔 조금 혼란스러웠지만, 이런 작은 차이들이 결국 여행의 재미를 만들어주는 부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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