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진과스, 지우펀 자유여행 파헤치기 3/5 [] 진과스 > 지우펀 지산지에, 수치루

 2014년 여름
맛있는 경치, 대만

예류에서 진과스행 버스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30분 이상 한시간 미만은 기다린듯 하다. 예류 지질공원을 떠나서 진과스에 하차하기까지 두 시간은 더 걸린듯 하다. 원래 진과스에서 광공식당의 광부도시락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하려 했으나 17시까지만 영업했다. 정확하게 17시에 도착한 나는 배고픔을 잊고 계속 걷기로 했다. 간식이고 뭐고 먹을게 아무것도 없었다. 식사는 커녕 오후 5시가 되고나니 초조해졌다. 원래 방문하려고 했던 장소들도 다 못가게 되어서 어디를 가야하나 고민했다.

진과스의 관광지로는 황금박물관, 인양하이(두 색깔의 바닷물이 만나는 곳),  황금폭포가 있는다. 광부도시락을 먹고 황금박물관을 들러 황금폭포와 인양하이를 갈 예정이었으나... 인양하이와 황금폭포는 한 시간 배차간격의 891번 버스를 타고 30분을 타고 더 가야하는 곳이라 진과스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정확한 정보를 좀 더 얻어볼까해서 가는 방법에 대해 물어보고 있었다. 이 때 옆에 있던 한국분이 시크하게 거기 멀고 별로 볼 거 없다고 해서 바로 접고 철길 산책을 선택. 진과스가 마지막 일정이었으면 이제 오후 5시인거니까 갔겠지만 지우펀이 있어서 그럴수도 없는 상황. 인양하이는 온대기후와 열대기후가 공존하는 대만의 인근 해역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인것 같아 궁금했는데 아쉬웠다. 이제 진과스 금광 철길 산책하며 찍은 사진과 진과스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자. 

@진과스 Jingaushi

청나라 광서 16년(1890), 지룽강 지 룽강 구간을 철도와 철교 로 건설 하던 중 일부 노동자들이 하천 수로에서 금가루를 발견했다. 러시와 금모래 세척의 범위는 지룽산 기슭의 롱탄(현재의 루이팡 기차역) 까지 상류로 확장되었다. 그 후 많은 금광 채굴자들이 금광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상류로 올라갔고, 1893년 조주(Chaozhou) 출신의 농부 리(李) ​​씨가 마침내 지우펀 산맥(Jiufen Mountains) 근처에서 작은 박의 노두가 드러난 황금 광맥을 발견했다. 지명 '진과스'는 크고 작은 박의 산 모양이 호박 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대만 말로 '황금박' 이라고도 불린다 . 원래 조용했던 지룽산은 크고 작은 황금 수박 노두의 발견으로 인해 번영하기 시작했으며 미래에 지우펀과 진과스 광산의 영광스러운 해를 열었다.

중일 전쟁 후, 1895년 에 대만 이 일본 에 할양되었다 . 일본 당국은 1896년에 "대만 광업 규정"을 공포하여 일본인만이 광업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대만 원주민의 광업 권리를 박탈했습니다. 1904년에 Benshan 3번 갱이 유황-비소 구리 광산 (Enargite)으로 굴착되었고, 갱의 점진적인 하향 굴착과 함께 광상 에서 출토된 구리 광산 의 생산량이 점차 증가하고 Jinguashi도 기존의 금-은 광산에서 금-은-구리 광산으로 바뀌었다. 앞으로 새로운 광산이 하나 둘 발견되면서 진과스시는 "일본 최초의 금광"으로 선정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경제가 침체되고 진과스 광산 지역도 영향을 받아 정유소가 강제로 문을 닫았을 뿐만 아니라 일본 에 광석을 수출하여 운영을 유지할 수 있었다 . 광산 지역도 다른 일본 회사로 바뀌면서 하렘 신타로에 의해 진과스 광산 지역의 성능이 점차 회복되었다. 당시 진과스는 '아시아 1위 귀금속 광산'으로 불리며 8만여 명이 금을 캐는 꿈을 이루기 위해 이곳에 모여들었다.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 일본의 전쟁 상황은 점차 긴장되어 비방위 자재에 대한 금광은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았다. 진과스 광산 감옥 노동 수용소 (대만에서는 "Bubi Zai Liao"라고 함)에는 주로 영국 연합군 1,000명 이상 포로를 억류했다. 이 연합군 포로의 노동 노동은 구리 채굴이었으며 열악한 노동조건과 엄격한 관리로 인해 이곳에서 많은 포로가 사망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중화민국이 대만을 점령하고 국민당 정부 의 시정으로 진과스의 작전은 점차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진과스 광산 지역은 원래 일본 수도의 소유였기 때문에 정부(경제부)가 진과스 광산 지역의 소유권을 인수하고 1946년 자원 위원회 에 양도 하여 "대만 금동 광산 준비소"를 설립했다.
1955년, 대만금동광물국은 "대만금속광업유한 회사"(타이진주식회사라고 함)로 개편되고 외국의 기술과 장비가 도입되었으며 연도별로 진과스 광산구는 양호한 운영 실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1973년 이후 진과스 광산 지역의 금과 구리 생산량이 점차 고갈되면서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1978년부터 대규모 노천 채굴을 시도하기 시작하여 광업 제련 및 제련 사업으로 사업의 초점을 옮겼다. 

1981년, 광물 처리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Gold Company는 은행에서 차입하여 Shuinandong 근처에 Liyak 구리 제련 공장 을 건설했다. 그러나 국제 구리 가격의 지속적인 하락으로 Taijin Company는 1985년 부서를 축소하고 Liyue 구리 제련소를 Taiwan Power Company에 인수했지만, Taijin Company는 은행 상환능력이 없어 1987년 마침내 폐쇄를 선언했다. Jinguashi 광산 지역의 토지는 Taiwan Sugar Corporation이 인수하면서 진과스의 100년 금 생산을 끝냈다. 오늘날 진과스의 인구는 광산이 채굴을 중단하면서 2,000명 미만으로 급격히 감소했으며 대부분이 노인과 어린이다.
1990년대 이후 관광산업을 중심으로 이웃한 지우펀이 다시 번성하게 되면서, 진과스 역시 정부와 지역주민의 주도 하에 문화관광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진과스의 인구는 지우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과도한 개발 및 상업화의 영향을 덜 받아 많은 예술가와 홈스테이가 이곳 에 정착했다. 로맨틱 하이웨이, 산기슭에 있는 슈이난 동굴 에서 진과스까지 두 개의 외부 주요 도로를 따라 가다 보면 옆으로 흩어져 있는 크고 작은 민박을 볼 수 있다. 

2004년, 타이페이 현 정부가 주도하고 Taiwan power corporation과 Taiwan sugar corporationdl 공동으로 개발한 금 박물관 공원이 공식적으로 개방 되어 진과스 광산의 발전 역사를 소개했으며, 진과스가 이전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한 중요한 단계를 상징하기도 했다.

광업 시대의 영광과 더불어 제2차 세계 대전 중 진과스의 역사를 검토하고 성찰하기 위해 대만 포로 기념관은 1997년부터 적극적으로 진과스 연합군 포로 수용소를 조성해 왔다 . 오래된 지역이며 2005년에 완공되었다. 매년 대만 포로 수용소 기념관 협회는 11월에 이 장소에서 엄숙한 추모식을 거행하는데, 이는 또한 진과스의 인본주의적 역사적 기억을 풍부하게 한다. (진과스 위키백과 발췌)

철로 따라 걷기가 좋았다. 그렇게 덥고 습하지 않았으며(해질녘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이 많이 붐비지 않아서 오롯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느낌이었다. 흔히 생각하는 자연속에서 힐링타임이라고 해야하나.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숲속이나 들판을 여유롭게 걸으며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힐링타임을 상상하고 어떤 장소를 방문했는데 관광객들로 바글바글하고 시끄러운데다가 여유롭게 걸을 수 없이 거의 줄지어 걸어야 하는 상황을 맞닥들였을 때의 당황스러움이란. 무튼 이곳은 정말 내가 생각하던 그런 힐링타임을 안겨준 곳이였다. 

다시 버스를 타고 왔던 방향으로 가면 지우펀이다. 지우펀으로 가는 788, 825, 965번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가면 된다. 몇 사람이 타지 않았는데 내가 탑승하고 이후에 탑승하는 사람이 아까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인양하이에 볼거 없다고 조언해준 여행객이었다. 이런 우연히?라는 생각을 하며 지우펀에 하차했다. 지우펀에서는 길 구경이다. 

@지우펀 지산지에 Jiufen Jishan street

지우펀의 지산지에서 드디어 오늘의 여행을 시작한 뒤로 첫 끼니를... 끼니를 거르는 일이 손에 꼽는 내가.. 이게 점심인지 저녁인지. 지산지에에 들어가자 마자 바로 어완탕 집으로..!
지산지에에서 관광객들이 찾는 무난한 상점으로는 무적항장(소세지), 고비취라(구운소라), 화생가빙기림(땅콩전병 아이스크림), 로우호우원(찹쌀경단 위위엔), 어환백자(어완탕)가 유명한듯 하다.

@어환백자

어환백자 집에서 어완탕(위완탕)을 먹었다. 어묵안에 만두같은 속이 들어있는 음식이다. 위에 뜨뜻한 국물과 속을 든든하게 만들어준 어완이 들어오는 순간 살아있음을 느꼈다.

@화생가빙기림

땅콩전병 아이스크림 집. 얇은 전병에 땅콩가루와 아이스크림 덩어리를 올리고 크레페처럼 둘둘 말은 아이스크림이다. 고수가 들어갔던것 같기도 하고... 가게 벽면에 보이는 사진처럼 전병을 펼쳐놓은 모형을 들고 기념 사진 찍어주는 서비스도 있다. 이 날 혼자 여행하였던지라 남이 찍어준 제대로 된 사진 두장 중 하나는 예류지질공원에서 네페르티티 여왕 모형암석과 여기ㅋㅋㅋ 뜨끈한거 먹고 시원한거 먹었더니 살것 같았다.
 
지산지에에는 이런 먹거리 뿐만아니라 다양한 상점이 있다. 우리나라 재래시장처럼 가방을 포함한 다양한 잡화를 파는 가게도 많고 기념품이나 선물용 간식거리를 파는 가게도 많다. 슬슬 해가 지려고 해서 지산지에를 지나 수치루로 향해본다.
지산지에를 빠져나와 수치루로 향하는 길의 지우펀 전경. 수치루의 초입. 좁은 골목길을 마주하고 상점가들이 줄서있다. 식당도 있고 소품점도 있고 카페도 있고. 아기자기한 곳이었다. 상점들을 둘러볼 여유도 없이 바로 수치루를 향해 이동했다.
하나 둘씩 홍등이 보이기 시작한다. 과연 이 구역을 제일가는 포토스팟이라 그런지 안그래도 좁은 골목인데 이동하려는 사람과, 이동하면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과, 작정하고 인생샷을 건지려는 사람이 뒤엉켜 제대로 오르내리기 어려운 길이었다. 움직이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틈틈히 예쁜 풍경을 담아보고자 했다. 개인적으로 홍등이 포인트이기 때문에 벌건 대낮이나 완전히 깜깜한 밤하늘을 배경으로 찍기보다는 푸르스름한 시간대의 초저녁에 찍는게 예쁘게 나오는것 같다.

@수치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으로 된 곳으로 유명한 곳. 이 근처의 찻집은 보통 주전자 가격으로 판다고 한다. 혼자 온 나는 한 주전자의 차를 다 마셨다가는 버스를 타고 되돌아가야 하기때문에 화장실 문제로 낭패를 볼 것 같기도 했고 혼자서 한 주전자를 다 비울 자신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시간이 없었다. 그놈의 시간은 도대체 언제 나는거야?
젊은 사람들에게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으로 알려져 있을것이고, 그 이상 연배의 사람들에게는 영화 '비정성시'의 배경으로 유명할 것이다. 도심에 위치한 곳도 아니고 이 지역에 수치루를 메인으로 관광하기는 참 어중간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짜는 루트처럼 다른 지역도 함께 묶으면 와볼만하지 않나 싶다. 홍등가의 메인인 계단은 365개로 1년을 의미한다.
눈에 띄는 수치루 메인건물. 이 건물인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곳에는 '비정성시' 이름을 가진 영화촬영지였다던 식당이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곤 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검색해보니 폐업인... 코로나의 풍파를 버티지 못했던 것일까
비도 오고, 해도 저물어가고 막차시간도 있기때문에 다시 시장거리를 지나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먼 곳까지 혼자 왔는데 제대로 된 식사도 못하고 일정을 마치기는 너무 아쉬워서 조그마난 부엉이 열쇠고리를 두 개 샀다. 이곳에서는 부엉이가 부적같은 의미를 가지는데 부엉이의 색깔에 따라 건강, 학업 등 이루어주는 소원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골라서 구매하기. 지금도 방문 손잡이에 하나씩 걸려있다. 
지우펀의 타이베이행 버스정류장. 비가 오는데다가 사람들이 해가진 후 수치로를 보고 타이베이로 돌아가기 때문에 시간이 겹쳤는지 버스 줄이 어마어마했다. 4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타이베이행 버스를 무려 두 대나 보냈는데 중간에 무개념 커플이 새치기를 시전하였다. 안그래도 짜증나 있는데 세 번째 버스가 왔을때 여섯명 남짓 정도 앞에서 또 짤리게 되어서 깊은 빡침을 느끼고 있는데...
버스 기사님이 빈 자리가 하나 있음을 확인하고 혼자 온 손님 한명을 태운다는데... 세상에 내 앞에 죄다 커플이었던 것이다. I’m solo를 외치며, 커플들의 부러운 시선을 느끼며(?) 커플들 사이를 비집고 마치 레드카펫 위를 걸으며 수상이라도 하러가는 사람마냥 버스에 탑승하는데 혼자인게 그렇게 행복한 순간이 또 없었던것 같다. 정말 이 순간만큼은 빛이 나는 솔로였다...

여기서 나름 신기했던 포인트. 그 하나 비어었던 좌석의 옆에는 지우펀행 버스 안에서도 봤던, 인양하이행을 만류했던 그 한국인이 앉아있었다. 무려 세 번의 만남이라 신기한 우연을 느끼며 한 시간 동안 기절해서 타이베이로 도착. 같은 한국인이라 말도 통하고 각자 혼자 여행하는 와중에(나는 일행이 있었지만) 너무 말 한마디도 안나누고 왔다 싶다. 그 만큼 말할 기력조차 없었다. 
타이베이 정류장에 내려 101타워 지하의 푸드코트에서 일행과 다시 만나 늦은 저녁식사. 내 일행은 다행히 복통이 가라앉아 주변을 좀 돌아다니다가 숙소로 돌아갔었다고. 위에 보이는 음식은 숙주와 고기를 주로 볶은 음식이었고 아래는 디저트였는데 연두부와 타피오카 등을 넣어 시원하고 달달한 맛이 났었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후식으로 열대과일을 먹으며 마무리. 파파야, 드래곤 후르츠 그리고... 저 연두색은 메론같이 생겼는데 메론도 아니고 사과도 아닌 과일이었는데 이름을 잊어버렸다. 셋째날 일정 끝. 여기서 저녁에 버스를 이용해서 타이페이로 돌아올 일정이라면 막차를 탈 생각으로 딱 맞춰오지 않는게 좋을것 같다. 내가 지우펀을 방문했던 시기가 유독 관광객이 몰리는 시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사람들도 초저녁에 방문을 많이 하는것 같아서 일정을 마무리하고 타이페이로 돌아가는 시간이 비슷할것 같다. 나처럼 버스를 두어대 보내고 타게될 수도 있으니 막차시간보다 앞선 시간대의 버스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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