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타이베이 첫번째 자유여행 파헤치기 5/5 [] 용산사 > 융캉제 > 동먼시장 > 스무시 하우스

   2014년 여름

맛있는 경치, 대만

마지막날, 첫번째 일정은 타이베이의 4대 관광지 중 하나인 용산사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3대 관광지는? 나머지는 중정기념당, 국부기념관, 국립고궁박물원
@용산사
용산사 역 1번출구. 이른 아침이지만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용산사는 휴무일 없이 상시 개방이며 6~22시까지 운영한다. 불교와 도교 신을 모두 모셔놓은 사원이다. 용산사는 처음 1700년대에 건설되었으나 지금보는 용산사의 모습은 수차례 재건 된 모습이다.

맹가용산사는 청나라 건륭 3년(1738년) 5월 18일에 처음 건립되었다. 당시 사찰토지 기증자인 황전모가 발기인으로 선정되었고, 당시 유명 간위사인 장차원(張堂團)이 풍수를 위해 특별히 고용되어 미동굴(현터)을 발견하여 용산사를 건설했다. 동시에 "거울의 아름다움"을 반영하기 위해 "Longshan Temple Pond"(현재 Longshan 쇼핑 센터)는 "Longshan Temple Pond"(현 Longshan Shopping Centre)를 "부처의 거울"로 조각했다. 
가경 20년(1815) 6월 5일, 용산사는 지진으로 거의 파괴되었고, 불좌를 제외한 모든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3명의 이족을 보내 15,000위안을 모금하고 같은 해 10월 8일에 재건을 시작했다. 그 이후로 용산사는 청나라 중기 대만의 대형 사찰에서 자주 채택한 안뜰형 삼방 양식이 되었다. 모든 전당은 3칸의 폭이 있는 전당과 양쪽에 한 줄의 경비실이 있으며, 정문 입구는 청나라 중기의 전형적인 사찰 형태인 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다.
52년에 걸친 재건 후, 동지 6년(1867년) 8월, 용산사는 태풍으로 황폐되어 사찰 벽이 심하게 파손되었다. 같은 해 10월 8일에 다시 리뉴얼 되었다. 대만의 덥고 습한 기후와 빈번한 지진과 태풍으로 인해 사원은 약 60년마다, 즉 1가자 기간 동안 보수되었다. 이 개축 후 52년 동안 유지되었으며 일제강점기까지 재건되지 않았다.
 
청나라 가청기에 창건된 용산사는 일제 8년(중화민국 8년, 서기 1919년)까지 기둥이 벗겨지고 기둥이 침식되어 위태로운 상태였다. 도예가, 석공, 미장공과 기타 장인 기술은 4일 동안 지속되었으며, 1924년 3월에 완료되었다. 프로젝트의 규모는 이전 건설보다 훨씬 더 크며 수년 동안 Longshan Temple의 가장 큰 건설이다. 이번에는 궁궐 양식의 건물을 건축에 사용하였고, 기존의 벽돌과 목조 건물을 현재의 목조와 석조 사원으로 변형하여 사원의 모습을 완전히 새롭게 단장하였다. 중국 남부의 궁전 양식 건물은 베이징의 대화당에 필적할 정도로 배치가 엄숙하고 조각된 들보와 채색된 건물의 아름다움이 매우 아름답다. 타이완 건축 장식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본당을 제외하고 지금 보이는 용산사는 대부분 1920년대에 지어진 것이다.
중화민국 34년(AD 1945) 연합군은 용산사를 총독의 궁전으로 잘못 판단하고 폭탄을 투하했다. 용산사의 본당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대들보며 기둥이며 모두 불탔는데 다음날 주민들이 남아있는 불씨를 잡으러 용산사에 왔는데 관음보살만은 온전했다고 한다. 전후 민생의 쇠퇴로 중화민국 44년(AD 1955)이 되어서야 왕이순의 조카인 왕수화의 양자인 왕시난이 재건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본당으로 중화민국 48년(1959년)에 완성되었다.
해방 후 용산사는 대중의 편의를 위해 지하 공중 화장실과 야간 조명 장비도 추가했다. 뒷전의 문창전은 1971년 화재로 재건되어 1972년 12월에 완공되었고, 관디전과 마주전은 1986년 12월 곰팡이 부식과 흰개미 침식으로 인해 재건되었다. 이후 '9.21 지진'으로 본당의 돌기둥이 파손되었다가 1990년대 2월에 복원되었다. - 용산사 공홈
사원 내부에서 향을 피우고 합장하며 염원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자신을 위해 또는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 이렇게도 많을까. 어떤 간절함이 이 아침부터 사람들을 이곳으로 모이게 했을까. 

태초에 대만 북부는 스모그가 많았던 곳으로 "6분의 3은 죽고 한 사람은 물러난다"는 말이 있듯이 환경이 매우 위험했다. 또한, 청나라 건륭 3년(1738)에 삼의 사람들이 공동으로 용산사를 건축하고 복건성 진장현 용산사의 관음보살을 초청했다. 대만에 오기 위해. 용산사는 주민들의 신앙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모든 문제와 소송에서 신에게 정의를 기원한다. 광서 10년(1884) 청불 전쟁 중 프랑스군은 지룽의 스추능능을 점거했고, 지역 주민들은 반란군을 조직하고 용산사에 있는 관청을 인쇄하여 프랑스군을 격퇴했다.
 
본당의 외벽에는 많은 유명 서예가의 석상이 조각되어 있다. apse의 지붕은 Xieshan 스타일과 이중 처마를 채택하여 전형적인 유교와 도교의 신과 부처를 모시는 곳이다. 좌우 수호룡은 종탑과 북탑, 아침종과 저녁 북을 장비하고 있다. 사원 전체의 지붕 능선과 처마는 용, 봉황, 유니콘 등의 마스코트 모양을 하고 있으며, 가위와 옹기로 장식되어 있다.- 용산사 공홈
우리나라 사찰처럼 제사를 지내주는 역할도 하는것일까? 실제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망자를 기리기 위해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들을 올려놓은 모습같아 보인다. 5일동안 대만에 있으면서 유일하게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었던 마지막 날. 공기는 상쾌하고 뽀송뽀송 하면서도 햇빛이 눈부시고 따가운 것이 영 어색했다.

@융캉제의 동먼시장
한국보다 견과류가 훨씬 싸다며 여기서 사가면 개이득이라는 물가에 빠삭한 동행인의 적극적인 액션으로 호두 한 봉지와 다양한 견과류가 혼합되어 있는 견과류 팩을 두 팩정도 샀다. 내가 샀던 집이 괜찮은 집인지 현지인들이 많이 구매하고 있었다.  
@스무시 하우스 본관(思慕昔)
11:30 ~ 22:30까지 운영한다. 요일에 따라서 11시에 영업을 시작하기도 하고 22시에 영업을 마치기도 한다. 이 근처에 누가크래커로 유명한 미미크래커와 커피 누가크래커로 유명한 세인트피터 동먼점이 있다. 융캉제 이쪽은 식당과 카페가 정말 많이 몰려있는 곳이다. 여기까지가 첫번째 대만여행의 일정 끝.
여행은 끝났으나 식사는 끝나지 않았다. 타오위안 공항 편의점에서 남은 잔돈을 털어 어묵탕 한 사발.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여러가지 먹거리를 즐길 수 있어서, 이국적이면서 자연적인 멋진 경관을 볼 수 있어서 눈과 입이 즐거웠던 대만 여행. 멀지 않은 거리에 타이베이 시내는 지하철만 타도 웬만한 곳은 다 갈 수 있도록 교통편도 편하고 남은 일정도 있어서 다음번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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